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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나주, 영산포제일병원 재개원 …

전남나주, 영산포제일병원 재개원 필요할까?

박병규 기자 전남 나주시 영산포 지역에 운영하면 적자가 불 보듯이 뻔한 종합병원을 개원을 두고서 시와 특정 의료법인 힘겨루기해 지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나주시는 영산포 발전협의회 등 지역민들의 응급의료에 필요성을 지난 지방선거에서 윤병태 후보에게 공약사항으로 반영해서 추진할 것을 요구해 공약사항을 추진하고 있다. 나주시는 오는 6월에 개원 예정으로 특정 의료법인에 전남 도비와 나주 시비를 포함해 약 15억 원과 매년 응급실 운영에 3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특정 의료법인은 폐원한 영산포제일병원을 17억5천만 원에 매입한 것이 현재로서 전부다. 이것은 누군가가 헌 집을 사고 나머지는 타인이 해 주는 모양새다. 나주시가 공약사항을 지키는 차원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약 추진은 시민의 혈세만을 낭비할 공산이 커서 사업추진을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영산포제일병원 재개원에 전남 도비와 나주 시비가 약 15억 원가량이 투입되고, 응급실이 운영되는 동안 매년 3억 원이 지원된다. 이쯤 되면 나주시가 응급의료센터를 자체적으로 보건소에서 운영해도 될 만한 예산이다. 영산포 지역내 응급환자의 진료도 나주시보건소의 응급수송과 나주소방서의 응급차, 민간 응급 차량이 나주 경찰의 수신호를 활용한 훈련을 하면 나주병원과 빛가람병원에 충분하게 수송해 진료를 할 수 있다. 나주에는 나주병원과 빛가람병원이 현재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주 인구 12만을 가정할 때 나주지역에서 발생할 환자를 수용하기에 충분하다. 부족하다면 이들 병원 응급실 운영 비용을 추가로 더 지원해 응급실 기능을 강화하면 될 일이다. 여기에 특정 의료법인은 영산포제일병원 재개원에 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이사회에서 논의했다는 여론은 있지만 정작 영산포제일병원 재개원에 100억 원 투자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서가 알려진 바 없다. 시민들에게 공증되지 않는 설만 난무한 채 언론을 통한 나주시 보조금 지원만 바라보며, 재개원 공사 재개 중지를 반복하고 있다. 사실 영산포제일병원 재개원을 시장공약이라면서 촉구한 특정 지역만의 환자를 위한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방선거 당시에도 영산포 지역에 거주하는 일부 시민들은 영산포제일병원을 통해서 지역에 유동 인구를 증가시키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는 여론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영산포의 발전을 위한 것도 아니고, 크게 보면 나주시민의 혈세를 좀먹는 근시 한 적이다. 연간 수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는 영산포제일병원 재개원은 나주시가 전체 시민들 대상을 집행해야 할 예산을 특정 의료법인 배 불리기에 사용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왕곡면 양산리에서 나주혁신도시로 도로가 개설된 이후로 영암 지역민들이 이 도로를 사용해 광주로 이동해 응급환자도 나주를 거치지 않고 광주로 신속하게 이동한다. 광주-완도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더 많은 사람이 나주를 거치지 않고 광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현재 영산포 지역에서 내과의원, 안과, 한의원 등이 개원에서 지역의료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 의료기관이 현재 충분하게 지역민들의 아픔을 치료하고 있다. 육신을 치료하는 것도 있지만 현재 영산포에서 운영되는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의료인들은 지역민들과 유대관계를 잘 형성에 마음의 치료도 하고 있다. 반면에, 수십억 원을 투입해 운영적자가 예상되는 영산포제일병원이 재개원한다고 해서 지역민들의 의료혜택이 좋아지는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영산포제일병원이 수십억의 공적자금이 투입되고서도 다시 문을 닫을 때 그 혈세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특정 의료법인은 적자운영이 불가피한데, 왜 영산포제일병원을 매입해 병원을 운영하려는 것인지 그 속내가 궁금하기도 하다.

참여와 소통으로 무너져 가는 농촌…

구르는 돌과 박힌 돌, 영원히 구르는 돌은 없다

참여와 소통으로 무너져 가는 농촌공동체를 되살리자.

길 현 종 전남장흥읍장 작년 12월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가 전국 10개 대도시 거주 시민을 대상으로 귀농·귀촌 의향을 조사한 결과 베이비붐 세대 61.6%가 귀농·귀촌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아울러 농림축산식품부가 2021년 발표한 2015년 이후 귀농 귀촌 현황을 보면 귀농이 1만 3천 가구, 귀촌이 35만 가구로 36만여 가구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귀농의 경우 자연환경이 좋아서와 농업발전 비전이 53.5%로 다수를 차지했고, 귀촌은 농산업분야 직장 취업 및 정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위해서가 39.4%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다보니 대도시권 근방은 귀농 귀촌을 방패삼은 별장화된 농막시설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고 도시와 먼 농촌의 경우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치며 정주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도 불거져 조용한 산골마을이 주민 간 불화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서로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개가 박힌 돌의 텃새라기보다는 구르는 돌의 이기주의가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골 농촌은 전래적으로 담장도 대문도 없이 사는 경우가 많다, 주인이 없어도 그냥 들어가 필요한 연장 갖다 쓰고 나중에 만나서 엊그제 연장 갖다 썼노라고 알려줘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 그런 문화가 저변에 자리 잡고 있다. 시골 농촌은 아파트에서 맞은편 호수에 누가 사는지 위층에 사는 이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층간소음이 불편해 얼굴만 찌푸리는 도시민들의 찌든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정서가 시골 농촌에서는 농촌시골 모습인 것이다. 친소관계를 떠나 누구네 잔치라도 있으면 주민들 불러 막걸리 한 잔 나눠 먹을 줄도 안다. 농촌 마을에는 관습이란 게 있어 이는 법의 잣대와 같은 마을자체 상규로 여기고 따른다. 필자가 거주하는 마을만 하더라도 봄맞이 대청소, 마을 하천 청소와 진입로 풀베기 등 전 주민 참여 울력을 1년에 4~5차례 하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부득이한 사유로 울력에 참여하지 못한 경우에도 불문율처럼 내려온 미도금이라는 명목의 벌금(?)을 내는데 인색하지 않는다. 울력의 근거와 미도금의 기준에 대해 따지는 순간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고 이에 동조해 주는 주민도 없다. 실제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90세 넘은 노인도 낫이나 호미를 들고 참여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기에 이런 분위기에 어깃장 소리를 내면 오래된 주민공동체 분위기를 해하려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다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도시와 농촌주민의 의식에는 보이지 않는 괴리가 있는 것 같다. 고향으로의 귀농·귀촌 시에는 덜하지만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의 귀농 귀촌의 경우 정주민과의 갈등이 많은 이유는 단순하다. 수십 년 내려온 전통과 질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더불어 사는 이웃과 공동체를 이룰 수가 있음에도 박힌 돌의 이끼만 보는 근시안적인 부분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벽이 쌓이는 것이다. 진입로가 예전부터 있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다니던 길일 뿐 인데 이웃이 생겨 반갑다는 마음이 들기도 전에 측량기를 들이대면 가시 돋친 설전이 오가게 된다. ‘알고 보니 내 땅이 조금 편입된 거 같으니 그리 아시라’는 말 한마디면 곱게 지나갈 일을 굳이 옆집 처마 밑에 붉은 측량 말뚝을 박는 순간 이웃이 아니라 원수가 된다. 그 땅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도회지처럼 한 평에 몇 천만 원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는 귀농 귀촌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신생아들의 울음소리가 듣기 어려운 농촌지자체가 인구절벽을 돌파하기 위한 노력도 눈물겹지만 겨우 몇 사람 유입해 온 한 두 사람으로 인해 소멸위기로 치닫는 조용한 농촌마을의 공동체 분위기마저 깨져가는 것은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이주민에게만 잘못을 묻거나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정주민의 주장이 옳을 수만도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고령화된 기존의 정주민이 세상을 등지고 나면 지금의 귀농 귀촌 세대가 박힌 돌이 되어 정주민이 된다는 사실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것처럼 기존의 공동체 분위기에 함께 들어가려는 노력, 이해와 설득으로 함께 보듬고 가려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됨을 의미하는 줄탁동시(啐啄同時)와 같은 내부적 역량과 외부적 환경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을 때 새로운 농촌공동체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굳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손 내미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그런 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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